법정에서 유죄 임증 책임은 검사가 범죄 입증해야 처벌가능
[순천/시사호남] 김근철기자= 2001년 1월 고흥군 점암면 시골마을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사망 당시 63세이던 여성 모 씨가 집 근처 대나무밭에서 주검으로 발견된다. 이 여인의 시신은 옷이 모두 벗겨진 채 뾰족한 물체에 찔리는 등 훼손된 상태였다.
사인은 경부압박으로 밝혀졌다. 즉, 누군가 B씨의 목을 졸라 살해한 후 시신을 대나무 밭에 옮겨놓았다는 추측. 고흥경찰서는 마을 주변 인물들을 용의선상에 올려 범인을 잡기 위해 열을 올렸다. 하지만 수사는 뚜렷한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종결되었고, 안타깝게도 이 여인의 억울한 죽음은 그대로 묻힌다.
2001년 1월 일어난 이른바 '고흥판 추억의 살인사건'이다. 화성연쇄살인 사건처럼 진실을 밝히지 못한 채 공소시효가 완성될 시점은 2009년이다. 고흥판 "추억의 살인사건" 60대 여인 살인 사건 용의자가 2009년 8년만에 법정에선다.
이때 광주지검 순천지청 담당검사는 순천시 황전면에서 발생한 이른바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을 담당한 강남석검사와 정모수사관이다. 검사 강남석이 이미 8년이 지난 사건 기록을 다시 끄집어 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사건 재수사에 돌입한다. 강남석검사는 사건 발생 당시 용의자 중 한 사람이었던 박모씨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피해자의 집에서 박모씨의 우산이 발견되었고, 부엌에선 박모씨가 피웠던 담배꽁초도 나왔다. 게다가 그는 30여년 전 1970년 강간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었다. 범행 수법도 여성을 살해한 후 신체의 특정부위를 훼손하는 등 이 사건과 매우 흡사했다.
강남석은 관심은 온통 박모씨에게 쏠렸다. 처음에 범행을 부인하던 박모씨는 검사 강남석과 수사관 정씨의 끈질긴 조사 끝에 다음과 같이 털어놓는다.
"그날 저녁이었어요. 마을 사람들과 식당에서 술을 마셨어요. 당연히 피해자도 함께 있었지요. 술자리가 끝난 후 일행 한 명이 차를 몰아 피해자를 먼저 집에 데려다 주었고, 나도 집에 가려던 참이었어요. 그런데 술 기운 때문인지 여자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동료의 차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피해자의 집을 찾아갔지 뭡니까. 내가 잠자리를 요구했는데 피해자가 몸이 좋지 않다고 거절하자 순간 자존심이 상해서 그만… …. 그뒤 죄책감에 단 하루도 제대로 잠을 못 잤어요."
강남석과 수사관 정씨는 박모씨의 자백만으로 2009년 7월 박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 기소하게 한다.
강남석과 수사관 정씨가 맡게돤 또 하나의 7월의 살인사건. 강검사와 수사관 정씨가 고흥 추억의 살인사건 용의자 박씨를 구속시킨 같은달 7월6일 순천시 황전면 용림리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다음달 8월24일 순천경찰서로 부터 이 사건을 넘겨받은 강남석 검사는 청선가리 막걸리를 마시고 사망한 피해자의 딸 백 씨가 이웃 주민에게 성폭행당했다고 고소한 별도 성범죄 사건을 송치받아 수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검사는 성범죄 사건의 피고인 이웃 남성을 '무혐의' 처분하고 대신, 딸 백 씨를 '무고' 혐의로 조사하며 그녀로부터 "청산가리와 막걸리를 구해 마당에 놓아 어머니가 마시게 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사건 경위에 대해 백 씨의 진술은 오락가락했지만, 강검사는 무리하게 수사를 이어갔다.
그러나 사건 해결의 핵심인 청산가리와 막걸리를 백 씨가 구입한 경위를 정확하게 밝히지 못했는데, 강검사는 "아버지가 공범이었다"는 또 하나의 조작수사를 통해 이를 해결하려 했다.
당시 수사관 정 씨와 함께 회유와 협박으로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자고 했다"는 딸 백 씨의 진술까지 받아낸 강검사는 그래도 앞뒤가 안 맞는 내용을 억지로 꿰맞추기 위해 자신이 단정해 놓은 사건의 방향을 딸 백 씨에게 주입해 사건 정황 진술 조서도 억지로 꾸몄다. 그런데도 1심 법원이 살인 혐의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자신의 출세에 혈안된 강남석 검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항소에 나섰고, 어처구니없게도 2심법원은 아버지 백 씨에게 무기징역 딸인 백 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으며 이 판결은 2012년 3월 대법원에서 확정돼 강검사는 일약 스타 검사'로 떡상하며 유명인 대접을 받고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을 하기도 했다.
두 사건 모두 과연 진짜 범인들 이었을까? 진범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자백은 항상 진실을 반영할까?
형사 사건의 자백이란 피고인(피의자)이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죄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만큼 확실한 증거가 또 어디 있을까마는 과연 자백은 항상 진실을 반영하고 절대적인 증거가 되는 걸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 때도 자백은 흔했다. 정권에 밉보인 사람들이 법원의 영장 없이 정보기관에 끌려가서 간첩이나 이적행위를 했다는 허위 자백을 강요받아야 했다. 정보기관이나 수사기관은 원하는 진술을 받아낼 때까지 고문하고, 폭행, 협박을 일삼았다. 심지어는 정권이 원하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이 죽기도 했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자백이 고문·폭행·협박·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에 의하여 자의로 진술된 것이 아니라고 인정될 때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도 있다 법원에서 재심을 통해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아람회 사건을 비롯한 수많은 공안사건에서 폭력으로 허위자백을 강요당했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한바 있다.
꼭 고문·협박이 아니더라도 자백이 꼭 진실을 담보한다는 보장은 없다. 설사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진실과 다른 진술을 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도 법이 자백한대로만 인정해야 한다면 뭔가 불합리하다.
형사소송법(제 310조)에는 "피고인의 자백이 그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유일의 증거일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있다. 이것을 이른바 자백의 보강법칙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자백은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함께 있어야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정리하자면 범죄를 스스로 인정하는 자백은 강요가 아닌 자기의 뜻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고(임의성), 객관적으로 믿을 만해야 한다(신빙성). 여기에 자백의 진실성을 뒷받침하는 보강증거가 있을 때 비로소 유죄의 증거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자백했더라도 보강 증거 없으면 처벌 못해"
다시 고흥살인 사건으로 돌아보자. 1심재판부(광주지법 순천지원 제1형사부 재판장 홍준호 부장판사)는 사건 당시엔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던 박 씨가 8년이나 지나서 자백하게 된 이유가 석연찮다고 보았다. 박 씨가 자백을 했다고는 하나 진술내용이 조금씩 계속 바뀌고 사건 정황과 맞지 않는 부분도 미심쩍었다.
범행동기도 마찬가지. 2009년 7월 강남석검사가 순천지청에 부임해 사건을 다시 꺼내면서 집중조사를 받는 받은 박 씨는 피해자를 살해하는 과정에서 성적 흥분을 느꼈을 뿐 성관계를 거절당해서 범행을 저지른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그는 피해자가 성관계를 거부하는 순간 격분하여 살해했다는 식으로 진술을 바꾸게 된다. 이때 재판부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다는 박 씨가 강력한 인상으로 남아 있을 범행 순간과 범행 동기에 관한 진술을 왜 자꾸 바꾸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범행의 방법과 도구에 관한 박 씨의 진술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납득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 검찰에서 범행 방법을 상세히 설명했던 그는 정작 법정에서는 "기억이 없고 추측하여 진술했던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고 범행도구도 조금씩 바뀌거나 기억해내지 못했다.
1심재판부는 이 때문에 "검사가 추궁하는 방향에 맞추어 진술 내용을 바꾸어 왔다고 볼 수 있어서 신빙성에 의문이 간다"고 지적했다. 그뿐이 아니다. 박 씨는 범행 도구와 피해자의 옷을 사체 근처에 버렸다고 밝혔으나 정작 그곳에는 범행도구도 없었고 옷도 1백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 박 씨를 집앞까지 차에 태워주웠다던 마을 사람의 얘기와는 달리, 박 씨는 "중간지점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박 씨 집으로 갔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이런 내용을 토대로 자백의 객관적 합리성의 정도, 자백진술이 수사진행에 따라 변경되는 모습과 정도, 자백진술과 정황증거 사이의 불일치 등을 고려해보면 박 씨의 자백은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박 씨의 우산과 피해자의 사진, 현장검증조서 등 검찰이 제출한 증거 중에는 자백의 진실성을 담보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보았다.
결국 1심재판부는 "피고인의 자백에 신빙성이 없으며, 보강증거도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물론 판결문을 보면 자백을 한 박 씨가 범인일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재판부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유죄 심증을 얻지 못하였다고 판단한 것.
설사 유죄라는 심증을 얻었더라도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면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는 것이고,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던 고흥 "추억의 살인사건"과 순천 황전 "청산가리 막거리 살인사건" 이 두건의 사건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언이 어떨 때 쓰이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